헌신의 근본적인 의미는 주님께 우리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크리스천은 주님께 무엇을 받을까를 먼저 생각하지 말고, 주님께 먼저 드릴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죄인인 여인이 그것도 자칭 의인이라는 바리새인의 집으로 들어와서, 랍비를 대면한다는 것의 당시의 유대인들의 관습에서는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유대인 사회는 과거 우리의 조선시대처럼 여자와 소위와 죄인을 엄격하게 차별했습니다. 사람을 셀 때 여자는 아예 제외해버릴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여자가 근엄한 바리새인과 랍비가 식사하는 자리에 나선다는 것은 가히 파격 그 자체입니다. 이 여인의 행동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인에게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는 화장품은 소중한 것입니다. 화장품이 귀하던 시절 유대의 여인이 옥합을 깨트려 그 향으로 자신을 적시는 것은 결혼식을 올리기 전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 앞에서 옥합을 깬 이 여인의 행동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옥합을 깼다는 것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주님께 드린 것입니다. 그녀에게 옥합은 아무리 많은 돈을 주어도 바꿀 수없는 그녀의 마음 그 자체였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놀라운 헌신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드린 것입니다. 이 여인은 마치 종처럼 주님의 발에 입을 맞추고 자신의 눈물과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았습니다. 참으로 보면 볼수록 놀랍고 대단한 헌신입니다. 옥합이라는 물질뿐 아니라, 자신의 온 몸으로 주님을 위해 헌신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헌신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봅니다. 백 마디의 말과 설명보다 이 여인의 행동은 헌신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주님은 이 여인과 비교해서 바리새인의 가식적인 행위를 꼬집습니다. 바리새인이 죄인인 이 여인처럼 주님께 헌신할 수 없었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요?(47절). 주님은 바리새인의 행위를 보시고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리새인은 자신을 의인이라고 생각했고, 여인은 죄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의인은 용서와 사죄의 은총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죄인은 용서하는 은혜가 절실합니다. 그러기에 여인은 절실하게 주님을 사랑하며 그에게 헌신하게 된 것입니다. 참된 헌신의 조건은 이러한 사죄의 기적입니다. 자신의 모든 죄가 은혜를 통해 용서되었다는 놀라운 확신이 있을 때 참된 헌신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와 무능을 고백하는 자는 주님으로부터 한없는 은혜와 용서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참된 헌신이 나오게 됩니다. 헌신은 무엇보다 드림입니다. 주님께 옥합과 눈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의 발 앞에 엎드려 그의 발에 입을 맞추는 것입니다. 헌신은 입의 사역이 아니라 옥합과 몸과 눈물의 사역입니다. 왜냐하면 아무 공로 없이 자신의 모든 죄가 용서되었음을 알고 고백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