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정해진 것으로 알고 쉽게 체념하지만, 인간의 삶은 운명론적인 요소보다 선택적인 요소가 더 많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눈을 뜨면 선택을 요구받게 됩니다. 오늘은 무엇을 먹으며 누굴 만날까? 개인적인 일부터 사소하고 큰일까지 순간순간 선택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좋은 친구와 학교를 선택하고, 배우자와 직업을 선택하며, 좋은 음악과 서적을 선택하는 것 모두 중요합니다. 특히 신앙인은 복음적이며 건강한 교회를 선택함에 주의해야 합니다. 본문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생이 결정되어지는 결과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우리 앞에 두개의 길이 있으니 선택하라 하십니다.(15) 이 축복과 저주는 바로 우리 앞에 가까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내가’는 하나님이시고 ‘오늘날’은 살아가는 매일의 삶의 현장을 말합니다. 누구든지 복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과 함께 저주의 가능성도 열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자유의지와 함께 그 책임을 지도록 창조하였습니다.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도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선택할 자유가 있었으며, 그 결과에 따라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두 개의 길을 말씀하시며, 가기는 힘들고 가는 이가 적어도, 생명으로 가는 길을 가라고 하셨습니다.(마태7:13-14)
그러면 두 길은 어떻게 다른 길일까요.(16, 19) 축복의 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사는 길입니다. 저주의 길은 다른 신을 섬기며, 자기중심으로 살아가는 길입니다.(17) 구원은 믿음으로 주어지는 선물이지만, 축복은 반드시 행위의 결과로 주어집니다. 그래서 16절 중간에 ‘그리하면’ 이렇게 해 주시겠다 하신 것입니다. 그 구체적인 명령은 20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 그를 의지하는 것임을 말씀합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리하지 말고,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선택을 잘못함으로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표적으로 에서와 롯입니다. 에서는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하나님이 주신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립니다. 그를 가리켜 망령된 자라 하시며 자신을 살피라 하셨습니다.(히12:16) 롯은 당장 눈에 보이는 현실만을 생각하다보니 소돔고모라를 선택함으로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이런 우리를 향하여 예수님은 롯의 이야기를 예를 들며 ‘롯의 처를 기억하라’ 하셨습니다.(누가 17장) 그러나 선택을 잘함으로 복을 받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와 모압 여인 룻입니다.
인간은 기계나 노예가 아닌 책임적 존재입니다.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로봇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은 자신이 책임져야 합니다. 사람의 운명은 날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주팔자나 관상학은 기독교적이지 않습니다. 운명론은 아주 위험한 사상으로 사람을 쉽게 체념하게 만들어 나약한 인간을 만들어 버립니다. 비록 약간의 운명적 요소가 있더라도 이제 하나님을 택하시고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생명의 길을 택하여 가계에 흐르는 저주도 끊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자유함이 있습니다.(요 8:32) 예수님이 이 모든 것을 다 십자가로 담당하시고 처리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존재입니다. 다소 힘들고 희생이 요구되어도 생명 길을 선택하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올 한해도 더 좋은 삶을 선택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고 의지함으로 예비 된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